2006년 07월 25일
고대(古代)의 전쟁 6
고대(古代)의 전쟁 6
1972년에 중국의 산동성(山東省) 임기현(臨沂縣)에 있는 은작산(銀雀山)에서 한(漢)나라 초기의 무덤을 발굴하였는데, 그 속에서 엄청난 양의 죽간이 나왔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손자병법》과 손무의 손자(孫子)로 알려진 손빈(孫 )이 썼다고 하는《손빈병법》이 같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이 은작산본 《손자병법》을 이전에 전해진 《손자병법》의 전본들과 비교해본즉, 내용에 그렇게 큰 차이는 발견되지 않아서 《손자병법》이라는 고전의 원전에 대한 시비부담은 경감되었다. 그러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은 기존의 13편 외에 처음 발견된 부분들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왜냐 하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병서의 내용들이 35편 정도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 내용들이 과연 《손자병법》에 추가되어야 할 것이냐를 놓고 학자들간에 이론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 35편의 내용을 보면 기존의 《손자병법》13편의 누락된 부분이 아닌가 의심될 수 있는 내용은 『사변(四變)』편과 지형이(地形二)의 두편이고, 사마천의 사기에 아주 간략하게 기술된 황제의 전쟁에 관한 기록인 『황제벌적제(黃帝伐赤帝)』편이 있다. 이것은 '황제가 적제를 정벌한 이야기'이다. 그밖에 손무가 오나라 왕 합려와 병법에 관해 대화를 하고 있는 내용인 것이 2편이 나왔는데 이것의 제목을 각각 「견오왕(見吳王)」과 「오문(吳問)」으로 하였다. 전자는 손무가 오왕을 배알한 자리에서 병법을 설명한 내용이며, 후자는 오왕이 이를 듣고 손무에게 질문한 내용이다. 내용 자체는 기존의 《손자병법》 13편과 연결되지 않으나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무와 오왕의 대화라는 점에서 최소한 《손자병법》의 부록이나 별첨 자료로 부기될 가치는 충분한 것이었다. 그 외에 손무가 직접 저술한 내용은 아니지만 모든 내용이 '손자왈'로 시작하는 것이 10여 편이 있었다. '공자왈'로 시작되는 것이 공자의 제자가 정리한 공자의 어록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 10여 편의 내용은 손무로부터 병법을 들은 후학이 기록해서 남긴 것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손자병법》의 13편에 부가해도 무리는 없으리라고 보여진다. 나머지 20편 중에는 손빈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 5편이 있고, 근거가 확실치 않은 15편이 있었다. 孫子曰, 黃帝南伐赤帝, 至于○○, 戰於反山之原, 右陰, 順術, 培沖, 大滅有之, ○年休民, ○穀, 赦罪. 비슷한 시기의 기록이지만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남긴 람세스2세의 전기(戰記)는 전투의 경과에 대한 사실적인 기술이다. 즉 몇 명의 군대를 어떻게 편성했으며, 언제 어디에서 모여서 어디를 경유해서 진군했으며, 어디에서 진을 쳤고, 어떻게 기동해서 우회나 포위를 시도했으며. 어떻게 싸움이 진행되어 누가 이겼는지 하는 구체적인 서술이다. 그러나 보다시피 손무가 들려주는 황제의 적제 정벌기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황제가 사방의 적을 정벌하여 천하를 평정할 수 있었던 이치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다소 안타까운 점은 이 은작산 죽간본은 보존상태가 좋지 못해서 판독이 불가능한 글자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군데군데 한두 글자씩 망실되었지만 앞뒤의 문맥으로 보아 유추할 수는 있기 때문에 내용의 대강을 읽어내기는 어렵지 않다. 이 은작산 죽간본의 출토로 해서 우리는 《사기》에 간략하게 기술되고 끝났던 황제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하게 알 수가 있게 되었다.
이 죽간의 『황제벌적제(黃帝伐赤帝)』편을 보면 손무는 오나라왕 합려에게 옛 황제의 고사를 빌어서 병법의 요체를 설명하고 있다. 제목을 보면 황제가 적제를 정벌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고전의 편명은 대개 첫문장의 첫구절로 삼는 것이 통례여서 그렇지 실제로 이 편에서의 내용은 황제가 사방의 적을 정벌하여 사해를 평정한 이야기이다. 훗날에는 중국인들이 사방의 적을 말할 때, 동이(東夷), 북적(北狄), 서융(西戎), 남만(南蠻)이라 했다. 그러나 까마득한 전설의 시대인 황제 당대에는 사방의 적을 동쪽은 청제(靑帝), 북쪽은 흑제(黑帝), 서쪽은 백제(白帝), 남쪽은 적제(赤帝)라 했다. 물론 다 상징적인 인물들이어서 람세스2세가 싸운 히타이트의 무와탈리스와는 달리 픽션인 감이 짙다.
한번 보도록 하자. 군데군데 '○'으로 표기한 것은 판독이 불가능한 글자이다. 손무가 오왕에게 말하기를, "황제가 남쪽으로 적제를 정벌할 때에 ○○까지 나아가서 반산(反山)의 들판에서 싸웠습니다. 황제는 우음(右陰)하고 순술(順術)하여 배충(倍沖)함으로써 적제를 크게 멸하고 ○년을 휴민(休民)케 하였고, 아울러 ○穀하며 사죄(赦罪)하였습니다" 했다.
여기서 우음(右陰)이라는 말의 뜻은 '음(陰)한 방법을 주로 하여 싸웠다'는 뜻이다. 무기를 잡는 손이 오른 손이기 때문에 병가에 말하는 우(右)는 '주(主)'라는 의미로 읽으면 대개 들어맞는다. 좌(左)는 부(副)이다. 음(陰)은 당시의 음양 개념으로는 '부드러움, 차가움, 아래, 우묵함, 어두움, 조용함, 숨음, 움직이지 않음' 등의 기운 내지는 성향이다. 그러니까 반대로 양(陽)은 '단단함, 뜨거움, 위, 불룩함, 드러남, 밝음, 시끄러움, 움직임' 등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황제는 굳세고 단단함이 아니라 무르고 부드러움이며, 뜨겁고 요란한 것이 아니라 차갑고 조용함이었으며, 드러나고 밝은 것이 아니라 숨고 어두움이며, 내달려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머물러있는 것에 의지하여 전쟁을 했다는 소리다. 이것이 병법의 요체라고 손무는 오왕에게 말하고 있다. 전쟁을 잘하는 자는 결코 나불대고 까불고 설치고 경망스럽게 굴지 않는다는 소리다. 병법의 정수는 양(陽)적인 것에 있지 않고 음(陰)적인 것에 있다는 소리다. 지금까지는 이 구절을 제대로 이해하지를 못해서 황제가 '권모술수에 의지해서 이겼다'는 식으로 해석을 해왔다. 그러나 '우음(右陰)'이라는 말의 진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다음의 순술(順術)은 황제의 전술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사리에 맞고 상황에 적합하여 천지의 도에 순응하는 것이었다고 하는 소리다. 결코 역(逆)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순(順)이 즉 병법의 요체라는 말이다. 이것도 은작산 죽간이 발견된 후에 학자들이 번역하여 옮기기를 우음(右陰)을 '권모술수'로, 순술(順術)은 거꾸로 '정공법'으로 풀이했다. 그러니까 황제라는 사람은 권모술수를 즐겨 쓰고, 정공법으로 공격도 해서 이겼다고 하는 소리다. 어딘가 앞뒤가 안 맞고 썰렁한 소리다. 고전의 한문을 이런 식으로 읽어온 것이 동양학이었다.
다음의 배충(倍沖)을 보자. 이 말은 '비우기를 거듭하였다'는 소리다. 배(倍)는 배가(倍加)한다, 더한다는 소리이고 충(沖)은 빌 충이다. 그래서 이 말은 마음을 비우고, 탐욕을 비우고, 성급함을 비우고, 분노를 비우는 것에 노력하였다고 읽으면 손무의 말뜻에 근접하는 풀이가 된다. 황제가 사방의 적을 정벌하고 사해(四海)를 안정시킬 때에 무엇에 의지하여 성취했는가를 아주 교훈적으로 들려주고 있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 배충(倍沖)을 '반격을 물리쳤다'는 식으로 억지해석을 해왔다. 도대체 옛 한자를 읽고 제대로 뜻을 알아낼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 다음에 중요한 구절이 뒤따라 나온다. 바로 '대멸유지(大滅有之)'라는 말이다. 이 구절에서 유(有)는 앞에 나온 충(沖)과 대응한다. 즉 황제는 비우는 것(沖)으로 그것을 가진 자(有)를 크게 멸했다는 소리다. 그러고 나서 무엇을 했느냐? 글자가 망실되어 기간이 확실치는 않지만 몇 년이라는 기간 동안 백성들을 쉬게 했다고 한다. 휴민(休民)이라는 말 속에는 여러 가지 시책이 포함된다. 이 기간 동안에는 군역과 부역이 면제되고 세금이 탕감된다. 이런 위무정책은 전국시대에 들어서서 대부분의 정복자들이 빼앗은 새로운 영토에서 시행한 것이다. 전국시대의 일본에서도 영주들이 전쟁을 통해 새로운 영지를 확보하면 그전 영주보다 세금을 낮추어주어서 영민들의 환심을 사는 정책을 흔히 썼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기원전 2천년 년 인물이 황제에게서 이미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 다음 구절인 ○곡(○穀)은 글자 하나를 알아볼 수 없지만 내용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양곡을 풀어 기민(饑民)을 구제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사죄(赦罪)는 감옥의 죄인들은 석방하고 죄를 사해준다는 사면의 시행이다.
황제벌적제(黃帝伐赤帝)』의 뒷부분은 똑같은 구절의 동형반복이 4번 계속된다. 즉 동쪽의 청제, 서쪽의 백제, 북쪽의 흑제로서 황제의 상대만 달라질 뿐 내용은 똑 같다. 그래서 원문도 적제에 대한 것 한가지만 소개한다.
손자왈, 황제남벌적제, 지우○○, 전어반산지원, 우음, 순술, 배충, 대멸유지, ○년휴민, ○곡, 사죄.
# by | 2006/07/25 16:16 | Oriental Studie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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